뮤지컬의 감동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무대 위 배우의 열연이나 가슴을 울리는 가사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설계도를 그리는 사람은 바로 ‘작곡가’다. 2025년, 뮤지컬 작곡가는 단순히 노래를 만드는 멜로디 메이커를 넘어,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작품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캐릭터의 영혼을 조각하며 관객의 감정선을 보이지 않는 실로 엮어내는 총괄 건축가다. 어떤 작곡가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마치 특정 영화감독의 작품을 선택하는 것과 같아서 그의 이름만으로도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결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글은 뮤지컬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지탱하는 세 명의 거장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 스티븐 손드하임, 그리고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 세계를 심층적으로 탐험하는 안내서다. 그들만의 독창적인 음악적 언어를 이해하는 순간, 당신은 멜로디 너머에 숨겨진 더 깊고 위대한 드라마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곡가, 음악으로 이야기의 영혼을 빚는 건축가
뮤지컬에서 음악은 결코 서사의 부속품이 아니다. 음악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서사이며, 때로는 대사보다 더 정직하게 인물의 내면을 폭로한다. 위대한 작곡가들은 각자의 뚜렷한 철학과 스타일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고유의 ‘음악적 DNA’를 심는다. 어떤 작곡가는 웅장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관객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어루만지는 반면, 어떤 작곡가는 복잡하고 지적인 화성으로 캐릭터의 심리적 갈등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이처럼 작곡가의 스타일은 작품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따라서 그의 음악적 서명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노래를 듣는 것을 넘어 작품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전문가적 시각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스타일로 알아보는 3인의 거장과 그들의 음악 세계
전 세계 뮤지컬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수많은 작곡가 중에서도, 특히 뚜렷한 개성과 영향력으로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한 3인의 거장이 있다. 이들의 음악 세계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은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가진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 웅장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의 마술사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메가뮤지컬(Megamusical)’ 시대를 연 제왕이다. 그의 이름은 곧 ‘흥행’의 동의어이며, 그의 음악은 뮤지컬을 전혀 모르는 사람의 귀에도 익숙할 만큼 강력한 대중성을 자랑한다. 그는 클래식 오페라의 웅장함과 팝의 감미로운 선율을 결합하여,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창조해 내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음악 스타일: 그의 음악은 감정적으로 매우 직설적이고 풍성하다. 복잡한 화성보다는 귀에 쉽게 감기는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을 중심으로,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감정을 최대치로 증폭시킨다. 또한, 특정 인물이나 주제를 상징하는 멜로디(라이트모티프)를 작품 전체에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극의 통일성과 깊이를 더한다.
-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 감상 포인트: 웨버의 작품을 감상할 때는 멜로디가 어떻게 감정의 파도를 만들어내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그의 음악은 머리로 분석하기보다 가슴으로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오페라의 유령>의 타이틀곡이 주는 압도적인 스케일이나 <캣츠>의 ‘Memory’가 선사하는 애절한 감동처럼, 멜로디 자체가 주는 순수한 쾌감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몸을 맡기는 것이 그의 음악을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다. 작품 곳곳에 숨겨진 라이트모티프를 발견하며 각 장면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는 것 또한 지적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스티븐 손드하임: 지적이고 복잡한 내면을 파고드는 철학자
만약 웨버가 감정의 마술사라면, 스티븐 손드하임은 인간 심리의 해부학자다. 그는 뮤지컬을 단순한 오락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현대 사회의 모순을 탐구하는 지적인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음악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통해 위로를 건네기보다, 때로는 불편하고 날카로운 불협화음을 통해 캐릭터의 복잡한 내면과 갈등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 음악 스타일: 손드하임의 음악은 ‘정교함’과 ‘복잡성’으로 요약된다. 그는 예측하기 어려운 박자 변화, 불협화음의 과감한 사용, 그리고 대사와 완벽하게 결합된 치밀한 가사 전달을 특징으로 한다. 그의 노래는 인물의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갑자기 말을 멈추거나 더듬는 순간까지도 음악적으로 표현된다.
- 대표작: <스위니 토드>, <컴퍼니>, <인투 더 우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작사)
- 감상 포인트: 손드하임의 음악은 능동적인 ‘듣기’를 요구한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가사에 집중하며, 음악이 어떻게 가사의 의미를 강화하고 때로는 반어적으로 비트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스위니 토드>에서 불협화음이 어떻게 광기와 불안감을 증폭시키는지, <컴퍼니>에서 단절된 멜로디가 어떻게 현대인의 고독을 표현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의 음악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곱씹을수록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지적인 퍼즐과 같다.
프랭크 와일드혼: 한국인의 감성을 저격하는 팝-록 사운드의 귀재
프랭크 와일드혼은 유독 대한민국에서 브로드웨이 본토보다 더 큰 사랑을 받는 독특한 위치의 작곡가다. 그의 음악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감성 코드, 즉 한(恨)과 격정적인 드라마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데 특화되어 있다. 그는 뮤지컬의 전통적인 문법보다는 대중적인 팝과 록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강력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만들어낸다.
- 음악 스타일: 그의 음악적 시그니처는 단연 ‘킬링 넘버(Killing Number)’라 불리는 폭발적인 파워 발라드다. 점층적으로 감정을 쌓아 올리다가 절정에서 모든 것을 터뜨리는 그의 노래들은, 배우의 가창력을 최대한으로 과시하고 관객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었다. 세련미보다는 직설적이고 강렬한 감정의 호소가 그의 가장 큰 무기다.
- 대표작: <지킬 앤 하이드>, <웃는 남자>, <데스노트>, <황태자 루돌프>
- 감상 포인트: 와일드혼의 작품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인공의 감정에 깊이 이입하여 그가 선사하는 감정의 격랑에 함께 휩쓸리는 것이다.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 주는 벅찬 희망, <웃는 남자>의 ‘그 눈을 떠’가 주는 처절한 절규처럼, 그의 음악은 관객의 감정선을 강하게 붙들고 흔든다. 복잡한 분석보다는, 배우의 목소리를 통해 터져 나오는 순수한 에너지와 드라마틱한 감정의 해소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것이 그의 음악을 즐기는 핵심이다.
당신의 취향을 저격할 작곡가는 누구인가?
세 거장의 음악 세계는 이처럼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당신의 감성과 지성을 자극할 작곡가는 누구인지 아래의 표를 통해 마지막으로 점검해 보자.
구분 | 앤드루 로이드 웨버 | 스티븐 손드하임 | 프랭크 와일드혼 |
핵심 키워드 | 웅장함, 서정성, 멜로디 | 지성, 복잡성, 아이러니 | 격정, 대중성, 카타르시스 |
대표 감성 | 숭고한 사랑, 비극적 아름다움 | 현대인의 고독, 인간 본성의 모순 | 처절한 절규, 폭발하는 열망 |
매력 포인트 | 귀에 감기는 아름다운 선율 | 가사와 음악의 완벽한 조화 | 심장을 뛰게 하는 파워 발라드 |
이런 관객에게 추천 | 클래식하고 감성적인 이야기를 선호하는 관객 | 지적인 유희와 깊이 있는 해석을 즐기는 관객 | 강렬한 감정적 해소를 원하는 관객 |
이제부터 뮤지컬을 선택할 때, 배우의 이름과 함께 작곡가의 이름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이는 당신이 어떤 종류의 음악적, 감정적 여행을 떠나게 될지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도다. 작곡가의 언어를 이해하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단순한 관객이 아닌, 작품과 깊이 교감하는 진정한 애호가로 거듭날 것이다.